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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의 뒷면과 이미지의 맨얼굴 《물타기》 연작(2019)을 중심으로

남상영 (비평가)
박현정의 작업은 이미지가 인터넷을 떠돌면서 가공되고 변형되며 다채로운 의미를 획득해가는 과정 그 자체를 닮아 있다. 먼저 작가는 여기저기서 범람하는 이미지들 중 눈에 띄는 이미지를 낚시하듯 건져 올린다. 그 다음 그는 이미지를 수채화로 한 차례 옮겨 그린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의 배경은 작가가 주목한 특정 부분만을 남기고 소거되며, 그 대상 또한 수채 특유의 몽글몽글한 색감과 질감을 얹고 재탄생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작가는 실과 바늘을 들고 천에 이미지를 수놓는다. 자수 이미지는 분명 원본에서 왔고 여전히 원본과의 닮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두 차례의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원본과 이미지를 이어주는 모종의 연결고리를 상실해버린다. 마지막 이미지를 보고 원본을 복구해내기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밈의 시초이자 유통자이자 수용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이미지는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탄생하고, 다른 누군가의 눈에 띄어 ‘밈화’(meme-化)되며, 그 밈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고 또 그중 누군가에 의해 끝도 없이 재가공된다. 현실에서 각각의 과정에 무수한 개인들이 관여하는 것과 달리, 박현정의 작업에서 각 과정을 수행하는 주체는 작가 한 사람으로 압축된다. 이로써 이미지의 재가공 과정이 지니는 무자비함은 더욱 부각된다. 작가는 어떤 이미지를 손에 넣든 수채화와 자수 작업을 반복하며, 작가의 눈에 띈 이상 어떠한 무서운 이야기도 보송보송한 실로써 “물타지는”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파스텔톤을 자주 사용하는 작가 특유의 동화 같은 그림체와 자수라는 매체는 작가가 주로 선택하는 이미지의 특성과 기묘한 방식으로 충돌하면서 독특한 효과를 창출해낸다. 특히 역사적으로 ‘여성적’이고, 조신하며, 정적이고 무해한 취미활동으로 여겨져 왔던 자수의 매체적 특성은 종종 원본 이미지의 폭력성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 물타기 > 연작 중 총을 겨누거나 불을 지르는 사람의 형상은 연분홍 실을 만나 귀여운 솜인형처럼 보이고, 폭탄이 터지는 장면은 얼핏 색색의 꽃이 만개한 꽃밭처럼 보인다. 또한 인터넷에서 아무렇게나 떠돌고 클릭 한 번으로 변형되는 이미지들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천에 한 땀 한 땀 수놓는 작가의 노동집약적 작업 방식은 그 자체로 충돌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어떤 진지한 이미지가 밈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이미지의 특정 부분이 실제보다 더 과장 및 부각되어 떠도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이미지의 어떤 부분은 침소봉대되고 더욱 강화된 의미를 획득하며 심지어 이미지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또는, 이미지의 어떤 부분이 갖는 의미가 고의적으로 흐려지거나 가려짐으로써 밈으로써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심각하거나 끔찍한 이미지의 특정 부분에서 뜬금없이 농담의 요소가 추출됨으로써 이미지가 가벼운 웃음거리로 소비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이미지는 원본의 무게감을 상실한 채 떠돈다. 편의상 전자를 정, 후자를 반으로 본다면 박현정의 작업 방식은 형식상 후자인 반의 과정에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작업에서 연하고 고운 색조나 자수 실이 주는 느낌은 분명 전시의 제목인 《물타기》가 암시하듯 원본 이미지의 폭력성을 의도적으로 가리거나 흐리게 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박현정의 작업은 원본에 내포한 폭력성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사소한 웃음거리로서 무마하려는 시도들과는 거리를 둔다. 가공을 거친 이미지들은 기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온 일개 기표로서 구천을 떠돌기보다, 작업이 택하는 정면충돌의 방식으로 말미암아 원본 이미지와의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기를 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스킨십을 하며 걸어가는 다정한 두 연인의 뒷모습으로 보이는 수채 이미지는 사내 성폭력 기사에서 차용되었다는 원 이미지의 맥락을 결코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말끔한 자수 뒷면에 마구잡이로 엉킨 실들이 도사리고 있듯, 동화 속 삽화 같은 이미지의 뽀얗고 부드러운 색감과 윤곽선은 사실을 알고 다시 이미지를 돌아본 관객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줄 수도 있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박현정의 작업은 여느 밈이 그러하듯, 모든 방향을 향해 열려 있다. 어디까지 즐기고 어디서부터 파헤칠 것인가? 혹은 파헤치기보다 새로운 의미를 덧칠하고 앞으로 뻗어나가기를 택할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관람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 물타기 >의 관람자 또한, 밈의 수용자와 닮았다.